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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수퍼스타 뉴스(중앙일보)

  • 등록일 : 2008-02-29
  • 조회수 : 1508
  • 작성자 : 관리자
불굴의 설인들 “쿨한 도전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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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광배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감독이 꽃다발을 손에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지난 1월 13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이 아메리카컵 봅슬레이 2인승에서 사상 처음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강광배(35) 강원도청 봅슬레이 감독이었다. 하루 뒤인 14일 이번에는 4인승 경기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메달 소식에는 극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 있었다. 훈련장도 없는 ‘불모지’에서, 그것도 장비가 없어 대회 때마다 남의 나라 봅슬레이를 빌려 타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수가 모자라 다른 종목 선수까지 긁어 모아 이룬 쾌거였다. 강 감독은 선수 역할까지 1인2역을 해냈다.

강 감독을 포함한 한국 봅슬레이대표팀이 27일 금의환향했다. 1월 5일 출국해 아메리카컵과 세계선수권대회(독일 알텐베르크)에 차례로 참가한 뒤 두 달 만의 귀국이다. 떠나던 날에는 몇몇 친지와 동료의 배웅을 받았지만, 돌아오는 날에는 수십 명의 협회·소속팀 관계자와 취재진에 둘러싸였다. 강 감독은 “썰매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 이토록 뜨거운 관심은 처음”이라고 감격했다.

#도전

강광배 감독에게 “왜 썰매를 타는지”부터 물었다. “(썰매에) 미쳐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도전의 연속인 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알파인 스키선수였던 그는 1990년대 중반 부상으로 운동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루지라는 새로운 목표를 찾아낸 그는 끝내 태극마크를 달고 겨울올림픽(98년 나가노) 무대를 밟았다. 멈추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유학에서 스켈레턴을 알게 된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와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는 스켈레턴 선수로 변신했다. 30대에 들어서서도 식지 않은 열정은 그를 봅슬레이로 이끌었다. “봅슬레이를 타고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목표”라는 그는 조심스럽게 “2010년에 뛴다면 2014년(소치 올림픽)까지도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임

강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5녀1남 중 외아들인 그에게 어머니(66)는 “네가 이제부터 우리 집 가장”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안방을 비워줬다. 걸맞은 대우와 그에 따른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책임감은 그에게 추진력을 길러줬다. 아메리카컵 4인승 경기 직전 연습에서 5~6등을 반복했다. 그는 “이왕 시작한 거 일 한번 내보자. 이번이 모처럼의 기회다”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 홍보용으로 제작된 썰매를 빌려 타고 3위를 했다. 스스로도 놀랐다. 그는 “2002년 스켈레턴 챌린지컵에서 2위 했을 때는 애국가도 태극기도 준비가 안 됐는데 이번엔 준비된 걸 보니 우리를 인정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현실

미래를 보며 살지만 두 발만큼은 현실에 닿아있는 강 감독이다. 관심을 얻게 되자 “전용 썰매가 없어서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다음은 경기장 건설일 듯한데 그는 “겨울올림픽을 열지 않는다면 낭비가 될 수도 있다”며 스타트 훈련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훈련장은 2억원 정도면 지을 수 있다”며 “훈련장이 생기면 월드컵 스타트 대회 등 국제대회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고

강 감독은 지난해 7월 2014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국제스포츠계의 유명 인사다. 99년부터 국제루지연맹과 국제봅슬레이연맹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면서 회장단과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스레 한국의 스포츠외교관 역할을 하게 됐다. 고배를 마셨지만 토리노 올림픽 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했다. 연세대에서 스포츠외교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해 8월부터 미국 유타대에서 연수 중이다. 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아닌 일개 아마추어 썰매선수가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 덕분”이라며 후배들에게 충고했다.

장혜수 기자(기사출처 : 중앙일보, 2008년 2월 28일자,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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