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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 2006학년도 학위 수여식

  • 등록일 : 2007-02-21
  • 조회수 : 2096
  • 작성자 : 대외협력홍보실

 특이졸업생.jpg

 

- 학사 1,988명, 박사 10명 -


전주대(총장 이남식)는 2월 23일(금) 오전 10시 30분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2006학년도 학위수여식를 갖는다. 이번 학위 수여식에는 학사 1,988명, 석사 81명, 박사 10명 등 총 2,079명이 각급 학위를 받는다.


각종 수상자를 보면 이사장상에 우명희(예체대 영상학과), 조성원(인문대 기독교학과), 총장상에 성적우수 장용(경영대학원, 석사)외 14명, 공로상 14명, 산자부장관상에 김영주(공대 전자물리), 전주시장상에 이지혜(예체대 음악학과) 등이 각종 상을 수상한다.


이로써 전주대는 학사 44,849명, 석사 2,563명, 박사 214명, 명예박사 12명 등 47,63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특이 졸업자 인터뷰>


임종금 前의원, 전주대 졸업식에서 공로상 수상

-學而時習, 晩學之喜 -

 

임종금 씨(57세/前 광명시의원)가 전주대 2007학년도 전기 졸업식에서 만학도로 졸업을 하여 신세대 학생들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여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만학의 기쁨을 누렸으며, 공로상까지 수상한다.


임씨는 오래 전에 안양과학대학을 졸업해 2년제 전문학사학위는 있었지만 4년제 학사학위가 없어 언젠가는 학문에 정진하여 못 다한 학문을 마무리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하리라 결심했었다. 2년 전, 그 당시 전주대가 다른 대학과 상당히 특성화된 커리큘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주대에 편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지역발전과 지역혁신에 앞장서는 점, 혁신적인 학사제도로 전문인 양성에 앞서가는 점, 미래의 비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점 등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되어 통학거리가 멀리만 고민 끝에 전주대로 편입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후 학업과정을 순조롭게 마치고, 그 토록 그리던 학사학위를 2월 23일 받게 되었다. 임씨는 자녀 같은 신세대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놀이도 함께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각종 사회활동을 병행하였다. 특히, 학생들에게 맏형으로서, 또는 부모 같은 입장에서 인생의 카운슬러가 되기도 하였지만, 학생이란 신분 때문에 동료로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회고. 때문에 임씨는 학생신분이지만 어려운 학생과 대학발전을 위하여 대학발전기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전주대가 발전하고 경쟁력이 있어야 외지학생들이 모이고, 외지학생들이 모여야 지역의 인구가 증가해 살기 좋은 고장이 될 것이 아닌가라는 단순한 생각에 대학에 발전기금도 기부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임씨는 고척산업용품종합상가사업협동조합이사장, 민주평화통일 광명시협의회 사무국장, 광명시의회 예결위원장, 민족통일 광명시협의회장, 희망산악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협성산업사 대표, 협성피복사 대표 등을 맡고 있으며, 향후 서민과 지역을 위한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봉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성열 씨 눈물의 박사학위 취득

- 장애 딛고 학문적 열매 맺어 -


최성열 씨(59세/목사/전주대 구내서점 사장)가 2월 23일 오전 10시 30분 전주대 학위수여식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최박사의 논문은 <환율변동이 경상수지 ․ 투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으로 최근 환율의 변동이 심한 시기에 시의 적절한 논문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경상수지를 살리기 위하여 원자재의 대체, 외국이 선호하는 제품생산, 외화유출 억제 등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지적해 내고 향후 2만불 시대를 준비하기 하기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 박사는 1948년 완주군 이서면 삼태마을 출신으로 5살 때 마루에서 떨어져 척추가리에스를 앓고,  평생 중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그는 출생한 시기도 어려운 시대였지만 워낙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살아가는데 많은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와 성실성, 그리고 믿음으로 무장되어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최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1970년대에 오미화 여사(53세)와 연애결혼을 해서 당대에 화제거리가 되었다. 1976년 대학시절 미팅에서 만난 오여사는 당시 간호사로서 나이팅게일정신과 아름다운 마음, 그리고 인류애가 넘치는 처녀였다. 기전여고 시절에 팔이 없는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성경책을 넘기지 못하여 옆에 있던 사모가 성경책을 한 장씩 넘겨주는 것을 보고 장애인도 정상인의 보살핌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자신의 일로 나타나 이 인연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알았다고 결혼동기를 말해 주었다.


최 박사는 전북대 상대 경제학과를 나와 1983년 팔달로에 3평짜리 국제서림을 열어 장사를 시작해 평수를 늘려 전북대 정문 앞에 국제서림 분점을 냈고, 1984년 전주대 구내서점을 열어 장사가 아닌 사업의 문을 열었다. 이후 장애인으로서 정상인 못지않은 성실함으로 사업의 성공과 학문적 탐구를 지속하며 살아왔다. 그는 전북대 경영대학원 산업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2005년 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을 수료해 목사안수까지 받아 현재 영광교회 전도목사로 전도활동에 정성을 쏟고 있다.


최 박사는 교회에서 다비다선교회장을 맡아 권사들과 함께 장애우, 독거노인, 침애노인 등 불우이웃을 찾아다니며 봉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그가 15년 전 장학금을 준 문모씨는 약사가 되어 최 박사를 찾아왔을 때 무한한 보람을 느꼈고 모교인 신흥고에도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장애인이 학문을 하는 데는 많은 시설이 아직도 정상인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애로가 있고, 자료를 모으는데도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최 박사는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늘 사모인 오미화 여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하나님의 축복과 박애정신, 그리고 신뢰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영광스런 순간을 맞을 수 있겠느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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