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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봉 金漢泰 나무할아버지 전주대에서 명예경영학 박사 취득

  • 등록일 : 2004-08-17
  • 조회수 : 1246
  •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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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 교과서에 소개된 주인공 - 거봉 김한태 나무할아버지가 8월 20일 오후 2시 전주대 후기 졸업식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를 받는다. 김할아버지의 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 력) 金漢泰 선생은 1922년 2월 26일 전북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에서 출생하여 국립경찰전문학교를 졸업(1950)하고, 경찰에 입문해 이듬 해에 경위로 임관(1952)하였으며, 10여년을 경찰에 투신하였다. 그러다 1962년 일본에 들어가 연수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임업에 종사하였다. 이후 1974년 산림청으로부터 모범 독림가로 인정받았으며, 1976년 백년임업사 대표이사, 한국임산협회장, 1979년 사단법인 한국조림가협회 부위원장, 1991년 국정교과서 사회과탐구(5학년 2학기 교과서)에 ‘나무할아버지’제하로 등재, 1993년 사단법인 한국독림가협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포 상) 金漢泰 선생은 1968년 농림부 장관으로부터 산림사업공로상을 받았으며, 1973년에는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조림성공상을, 1974년 산림청장으로부터 모범독림가 인정을, 1981년에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1991년에는 FAO로부터 UN국제농업식량기구 육림표창장을, 1995년에는 재정경제원 장관으로부터 성실 납세의무 이행 표창장을, 1995년에는 전북일보사로부터 제20회 산업부문 전북대상을 각각 받았다. (공적 사항) 金漢泰 선생은 6.25 동란이 이후 척박한 우리나라 산야에 직접 육림을 조성하고 나무 사랑을 실천한 산증인 중의 한분이다. 그는 불혹의 나이에 공무원생활을 접고, 외롭고 힘든 육림 보육의 길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40년 이상 외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 국가재건을 빌미로 모든 분야에서 산업육성 정책만 회자되고 있을 때 20년 이후 부국을 그리며 조림과 육림의 정책을 외치고 그 길로 나서 외롭게 산야를 일군 나무 할아버지이다. 그는 1963년 263정보의 땅을 매입 처음으로 낙엽송, 편백 등을 5만 2천수 식재하였으며, 매년 년차적으로 조림하여 10년 동안 52만주을 조림하였고, 30년간 1천3백여 정보에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렇듯 金漢泰 선생의 업적과 땀의 결실은 세상에 알려져 1991년에는 국정교과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에 ‘나무 할아버지’라는 제하의 관련 글이 게재되기까지 하였다. 그는 1991년 휴양림으로 지정을 받아 조성사업 승인을 얻었고, 1992년 1차 12억원을, 1995년 2차 27억원을 각각 투입해 오늘의 수려한 성수산 청소년 수련원 및 성수산 자연 휴양림을 조성하였다. 성수산 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모태로 국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200만평의 임야에 버섯재배장, 어린이수영장, 낚시터, 통나무하우스, 각종 연수장을 마련하여 청소년 정서함양에 힘쓰고 있다. (결 어) 金漢泰 선생은 1960년대 엄울한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오직 육림을 통해서 20년 이후를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신실한 신앙과 진지한 삶을 가꾸어간 이 시대의 어른이다. 따라서 육림가 인간 金漢泰 선생의 성공 스토리는 단순히 성공사례로써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표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의 육림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해 국민적 에너지를 창출케 한 점, 청소년들에게 수련장을 마련해 꿈과 희망을 키운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써 이를 높이 평가하며 우리 대학교가 이 분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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