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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연구단]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유교 윤리 소환과 경제 갱생 프로젝트 - 익산문묘(益山文廟)를 중심으로 -
작성일 2021-01-12 조회수 696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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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1920년대부터 연달아 발생한 공황으로 1930년 일본 경제는 만성적 위축 상황에직면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경제를 활성 시킬 방안으로 농가가 자체적으로 경제 갱생을도모하는 ‘농가경제갱생계획’ 즉, 농촌진흥운동을 수립·시행하였다. 농촌진흥운동은 농가 경제를 갱생시켜 국가적 궁핍을 해결하는데 목적을 두었지만 영농 관련 기술의 보급이 아닌 농민의 ‘정신’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총독부가 농가에 보급하고자한 정신은 ‘숭고한 희생적 봉공심(奉公心)’과 ‘자기를 바치는 노력’이었다. 1932년 조선총독부는 이 ‘숭고한 정신’을 유도하기 위해 조선 사회에서 통용되던 향약 덕목인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에 주목하였다. 향약의 특성상 경제적 자립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민심을지배 정책에 알맞게 ‘교화(敎化)’하고 민풍을 ‘개선’할 수 있는 덕목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933년 학무국장은 모든 향약 단체에 기본 덕목인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 외에 ‘생활개선(生活改善)’과 ‘산업장려(産業獎勵)’라는 두 개의 조목을 추가하도록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추가적으로 지시한 ‘생활개선(生活改善)’과 ‘산업장려(産業獎勵)’는 자력(自力)에 의한 생산성 고양으로 경제 갱생을 도모하는 농촌진흥운동의 목적과 맞닿아있다. 조선총독부는 촌락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생활을 향약 규약으로 통제하여, 개인에게 적극적인 경제 활동의 수행을 종용하고 이로써 ‘봉공(奉公)’을 유도하였다. 결국일제강점기 향약은 지역공동체 구성원에게 식민지배 정책에 적합한 생활방식을 강권하기 위해 마련된 ‘선택된 전통’이자, 변형되어 ‘소환된 전통’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장려에 따라 1935년 1월 익산문묘(益山文廟)에 향약이 신설되었다. 외피는 지역공동체의 형식을 띠었지만 식민 행정 권력에 의해 배태된 익산문묘 향약은활동 측면에서 관변적 성격을 보였다. 조선총독부는 향약이 지닌 재산 또는 향약 구성원이 지닌 재산을 식민통치에 흡수하려는 ‘물질적 동원’과 향약 구성원의 신체를 식민지배체제에 적용시키는 ‘인적 동원’ 두 가지를 목적으로 설정하고 향약을 동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