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연구단] 식민지 조선의 영유아 신체 발육 심사와 차별적 요소 탐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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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01 조회수 304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
첨부 : 20221213.논문.식민지 조선의 영유아 신체 발육 심사와 차별적 요소 탐색.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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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20289 |
국문초록 일제강점기 영유아는 미래의 인적자원으로, 그들의 신체적 건강은 근대 식민권력의주된 관심사였다. 지속적인 관리가 전제된 영유아는 성인과 달리 성장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에 식민권력은 영유아의 건강을 증진시킬 방안을 모색하였다. 본고에서는 식민지조선의 영유아 심사회에 착안하여 영유아 건강관리 실상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영유아심사회가 지닌 차별 요소를 탐색하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영유아의 건강에 주목한 시점은 1920년대부터이다. 식민권력은 영유아의 건강 표준치를 전체적으로 향상시키는데 목표를 두었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통계조사를 통해 영유아 신체 발육표준지표를 작성하였다. 표준지표는 키, 체중, 머리둘레, 가슴둘레의 4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영유아 심사회는 표준지표를 기준으로 의학 전문가들이 심사하여 영유아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장이었다. 영유아 심사회는 1930년대 들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때 심사를 받은 영유아는 ‘입선’과 ‘낙선’으로 구분되었다. 입선된 영유아 중 신체발육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면 ‘우량’아로 표창되었다. 반면 낙선된 영유아는 ‘불량’ 으로 낙인되어 표준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건강상담소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게 하는등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되었다. 영유아 심사회는 선천적으로 병이 있는 사람은 참여가 불가능하여 지원 자격에서부터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이는 영유아 건강관리에 영향을 미쳤고, 환경에따른 차별로 이어졌다. 생활수준, 거주지 등의 차이로 일부 영유아는 영유아 심사회 참여및 건강상담소 등의 의료 전문 기관을 이용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권력은 영유아 심사회를 통해 영유아의 전체적인 신체 성장의 표준치를 제고하고자 하였지만 여러 이유로 배제된 영유아가 존재했고, 결국 영유아의 건강관리는 일부선택받은 영유아에게 제한되어 다뤄졌다는 한계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