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연구단] 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의 『인도(人道)』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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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12 조회수 924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
첨부 : 20201228.논문.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의 『인도(人道)』 연구.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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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75453 |
국문초록 1920~36년은 일제가 강압적인 무단통치에서 기만적인 문화통치로 정책 기조를 바꾸었기에 200여 종이 넘는 잡지가 발행되었다. 특정 단체의 이익이나 종교, 예술 등을 표방하는 잡지들이 등장했고, 유교단체에서 발행한 잡지도 다수 있었다. 『인도』는 충남 홍성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유교부식회가 발행한 기관지이다. 유교부식회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했던 김복한의 후손 및 제자들이 결성한 단체였다. 대부분의 유교단체가 식민지 관료와 친일파 인사가 주도한 어용단체였음에 비해 유교부식회는 항일⋅민족적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 본고는 유교부식회가 발행한 『인도』의 발행과 성격에 대해 고구하였다. 『인도』는 1929년 6월 15일 창간호를 시작으로 1931년 3월 15일 종간호까지 1년 9개월간 통권 9호를 발행했고, 『유교부식회보』 1호도 발행했다. 일제의 검열 때문에 전문 또는 몇 행이 삭제되는 일이 많았고, 9개월간 휴간하기도 했다. 『인도』는 유교잡지이면서도 문예, 실용, 교양, 시사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종합잡지이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도』는 유교 전문잡지답게 경전의 구절 해설, 공자의 추숭, 유교의 정체성 확립 등과 관련된 원고를 수록하고 있지만, 유교의 현재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둘째, 『인도』는 교양을 강화하기 위해 과학, 농촌, 가정 등의 강좌를 마련하고, 시사용어를 소개하는 등 계몽적 성격이 강하다. 셋째, 『인도』는 문명국을 자부하고, 단군을 소환하며, 조선 민중을 우선시하는 등 민족적, 항일적 성격이 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