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HK+연구단 제17차 세미나 (2019. 11. 20.) |
---|
작성일: 2019-11-25 조회수: 790 작성자: 한국학고전연구소 |
일시 : 2019년 11월 20일 14시 장소 : 전주대학교 한지산업관 201호 발제 : 서정화(전주대 HK교수) 주제 : 근대 한국의 문명전환과 개혁론 –유교비판과 변통 제17차 세미나는 김도형(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근대 한국의 문명전환과 개혁론 –유교비판과 변통』을 함께 읽고 토론하였다. 김도형 교수의 책에서 먼저 제기하는 문제는 바로 개항을 계기로 조선왕조와 그 지배층, 유자층이 서양을 어떻게, 어느 수준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동시에 국정 교학이었던 유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서양은 월등한 무력과 경제력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문명’을 과시하였고, 비서구 지역의 전통은 ‘야만’ 또는 ‘미개’로 규정하였다.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문명화, 개화로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전통문화와 유교는 어떤 형태로든지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근대의 개혁론은 이런 차원에서 형성·발전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를 크게 세 형태, 곧 양무개혁론(洋務改革論), 변법개혁론(變法改革論), 문명개화론(文明開化論)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양무개혁론은 서양의 기술문명만을 수용하면서 기존의 이념체계인 유교는 유지하고, 또한 유교적 이념이 실현되는 정치체제도 기존의 군주 중심으로 운영하고자 하였다. 이런 논의는 이미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에서 형성된 실학, 그 가운데서도 북학론(北學論)이 계승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들이 고수할 문명은 여전히 유교문명이었고 서양의 기술도 이용후생의 차원에서 유교문명을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를 양무개혁론, 또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문명개화론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경험하면서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문명화’하고, 동시에 청국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무개혁사업에 참여했다가 이탈한 김옥균, 박영효 등이 그 주역이었다. 이들은 유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서양문명을 최고 단계의 ‘문명’으로 인식하였으며, 조선의 유교문명은 서양문명에 견주어 미개 또는 반(半)개화 정도 된다고 파악하였다. 이 논의는 청일전쟁 이후 『독립신문』 등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이들은 서양의 기술은 말할 것 없고, 서양의 정치와 풍속, 그리고 종교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기독교를 종교적으로 신앙하는 사람들도 차츰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변법개혁론은 청일전쟁 이후 서양문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한제국 정부도 종래의 양무개혁 수준보다 더 폭넓게 서양문명을 인정하고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원칙 아래 개혁사업을 전개하자는 논의이다. 실제로 대한제국 당시 광무개혁의 주요 기조였으며, 이런 변화 속에서 많은 유생층의 사상도 변화되었다. 청국에서 일어난 변법자강운동의 영향으로, 그들은 과도한 서구화를 비판하고 우리 전통문명과 서구문명을 절충적으로 결합하고자 하였다. 곧 시세에 뒤떨어진 유교를 개혁하면서, 유교의 변통론(變通論), 변역론(變易論)에 의거하여 서양의 정치론까지 수용하자는 논의가 바로 변법개혁론이었다. 이상의 발제 이후,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주요 개념의 성격을 토론하고, 최근 연구경향에서는 이상의 분류에서 ‘독립주권’과 ‘인민기본권’ 개념에 대한 인식까지 다룰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다는 등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