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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학연구소 문경득(특별연구원)-전북일보 칼럼(2014.03.04)
작성일: 2014-03-20 조회수: 1428 작성자: 김남경
21세기 대한민국 절양가
-아이낳기 포기하지 말고 환경·구조적 문제 개선 낮은 출산율 해결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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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세 그루 있다. 각각 맛난 홍시와 단감이 열리는 감나무였다. 그러나 집 앞에 건물이 들어서 햇빛을 가리고 땅이 습해지면서, 이제 감도 잘 열리지 않고 열리는 감도 예전의 맛이 나지 않게 되었다. 맛난 감이 열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엉뚱하지만, 그런 감나무를 보고 있자니 정약용이 지었다는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절양(絶陽)’은 남자의 생식기를 자른다(!)는 뜻이다. 이 시는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당해 지내던 1803년에, 가혹한 군포(軍布) 징수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남자가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며 지은 시이다.

이런 현실은 조선 후기 군역(軍役)과 세금수취제도의 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먼저 조선시대의 군역은 지금의 징병제처럼 모든 양민이 군역을 져야 했다. 하지만 군역은 예나지금이나 고되고 힘들었다. 그래서 조선후기에 포를 내고 군역을 회피하는 폐단이 성행하자, 결국 나라에서도 군역 대신 포(布)를 받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세금수취제도의 경우, 본래 조선초기에는 개인이나 토지에 직접 세금을 부과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조선후기가 되면서 지방 군현에 일괄적으로 일정액을 부과하여 징수하는 비총제(比摠制)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군역제도 및 세금수취제도의 변화는 구조적 부패를 낳았다. 즉,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군역은 착복할 수 없지만, 포로 내는 세금은 착복이 가능했다. 그리고 중앙정부에 올려 보낼 세금은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지방 수령과 서리는 많이 걷은 뒤, 정해진 양만 서울에 바치고 나머지를 착복했다. 그래서 군포 징수의 대상이 아닌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조차 군역을 씌워 포를 받아내는 황구첨정(黃口簽丁), 이미 죽은 사람도 군적에서 빼지 않고 계속 수포하는 백골징포(白骨徵布)가 자행되었다. 〈애절양〉의 주인공은 그런 구조적 부패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잘라야했던 조선시대 양민의 이야기가 그저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에 있다. 비록 원인은 다르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도 사실상 〈애절양〉이 지어지던 시절과 비슷하게 아이를 낳아 기르기를 포기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해 스스로 성기를 자르지 않아도 피임을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1.19라는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구조적 문제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무척 불행한 일이다. 게다가 이런 낮은 출산율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척 암울해진다. 2060년에는 노년층 비율이 40.1%가 되는 사회가 된다는 예측도 있다.

이렇게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출산율에 관한 문제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유전자를 남기는 생물본연의 본능적 의무를 포기할 수 없다. 물론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자는 말이 아니다. 포기하지 말고,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식물인 감나무와 달리, 좋지 않은 환경을 벗어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