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키움] HK+연구단 제24차 콜로키움(2020. 5.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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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6-02 조회수: 614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
일시 : 2020년 5월 28일(목) 4시 장소 : 전주대학교 진리관 209호 강사 : 전봉희(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주제 : 한옥(韓屋)의 역사와 전망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HK+연구단은 전봉희 교수(서울대)를 모시고 “한옥의 역사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24차 콜로키움을 진행하였다. 한옥은 흔히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을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개항 이후 ‘양옥’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단어이다. 또한 전봉희 교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국의 전통가옥을 넘어서 현대 한국인이 거주하는 거주공간의 양식까지도 한옥의 범주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한옥과 아파트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단절적이지만, 온돌-부엌-마루라는 요소로 분해해보면 연속적인 주거양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옥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선사시대에는 온돌-부엌-마루가 분화되지 않은 움집이었다. 여기서 부엌이 분리되면서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기본적인 가옥이 형성되었는데, 이 단계까지는 아직 문화적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생활 공간이 분화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지역과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주택 양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옥을 대표하는 요소인 ‘온돌’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나, ‘캉[炕]’처럼 실내 일부 구간에만 구들을 놓는 부분 온돌의 형식이다. 방 전체에 구들을 설치하는 전면 온돌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중엽 이후이다. 다만 이때까지도 아직 각 건물은 용도별로 분리된 상태였다. 온돌이 한반도 내에 보급이 완료되는 시점은 대략 17세기로 이 시기 이후에는 한반도 어디에서든 발견되는 한옥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마루는 감시나 해충을 피하고자 하는 실용적인 용도와 더불어 존엄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례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간으로 출현하였다. 이러한 요소 중 두 가지가 각각 결합하면서 한옥이 형성되어갔다. 먼저 궁궐이나 침전 등 신분을 드러내는 의례적 요소가 필요한 건축물에서 온돌과 마루가 결합하였다. 반면 서민의 주택에서는 ‘먹고살기’라는 관점에서 온돌과 부엌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다만 온돌과 부엌의 결합은 다소 복잡한 기술적 처리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는 한옥 특유의 방식인 부뚜막이 등장했다. 여기에 더해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좌식 문화가 정착하면서 독립되어 있던 주택 구성요소들의 결합을 촉진하였다. 그 결과 온돌-부엌-마루의 결합이 두루 갖추어지면서 한옥의 완성이 이루어졌다. 4칸집이 최소형이며, 그 배열은 부엌-방-마루-방의 구성이 전형적이다. 삼남형이나 중부형, 평안도형, 함경도 형등 지역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이 단계부터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에 접어들면서는 재료의 변화와 구조의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도시 한옥의 경우, 표준적인 주택이 지어져 판매되었는데 도시화의 영향으로 남성의 업무공간인 사랑채가 소멸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해방 이후에는 1960년대 초에 새로운 건축법의 제정으로 목조건축의 신축이 불가능해지면서 한옥은 더 이상 지어지지 않게 되었다. 또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아파트가 대부분의 주택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아파트도 그 내부에는 온돌+부엌+마루라는 구성요소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특히 온돌은 ‘온돌마루’와 같은 자재와 온수 파이프로 난방을 하는 ‘패널히팅’ 방식으로 현대 주거양식에서도 구현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파트도 온돌-부엌-마루라는 기준으로 볼 때 한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옥의 사례는 현대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해석에도 일정한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