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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봉 교수님 〔새만금 일보-명사칼럼 ]
작성일: 2015-02-13 조회수: 2309 작성자: 김남경
http://www.smgnews.co.kr/sub_read.html?uid=104331&section=sc7&section2=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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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빈일소(一嚬一笑)도 아끼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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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의 십상시(十常侍) 사건으로, 전임 대통령의 회고록 간행으로 나라가 쉴 새 없이 시끄럽다. 정윤회의 정체는 무엇인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삼인방을 중심으로 한 인적쇄신을 기하라! 야당의 공격이 자못 매섭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라는 속담이 항간에 떠돈다. 여기에다가 이명박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 간행과 관련하여 자기방어라는 둥, 자화자찬이라는 둥, 현 정권에 대한 압력이라는 둥 여러 입들이 바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출간 시기가 과연 적절한가하는 점에 관해서는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예로부터 어른들은 감고계금(鑑古戒今)이라고 했다. 옛날 일을 거울삼아 오늘의 현실에서 경계하라는 말이다. 갑자기 한()나라의 소후(昭侯)가 생각난다.

옛날 중국 땅에 수많은 나라들이 힘을 겨루던, 그래서 이름조차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일컬어지던 나날에 한()나라가 있었다.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남동부에서부터 허난성[河南省] 중부에 자리 잡았던 한나라(BC 453BC 230)는 힘깨나 있었던 모양이다. 전국시대의 일곱 강대국[戰國七雄(전국칠웅)]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니, 이른바 전국시대판 G7이었다.

BC 453년에 주()의 위열왕(威列王)으로부터 제후로 승인 받아 마침내 독립국이 된 한나라는 바로 소후(昭侯) 때에 이르러 강성해졌다. BC 355년 신불해(申不害)를 재상으로 삼은 소후는 관료체제를 정비하고, 부국강병책을 취하여 중원의 G7으로 부상(浮上)하였던 것이다. 이후로 그는 죽을 때까지 15년 동안 이웃나라의 도전 없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신불해를 재상으로 발탁한 직후다. 어느 날 소후가 시종 하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떨어진 바지 한 장을 내주며 잘 간직해두라고 당부했다. 명품도 아닌, 누더기 바지를 받아든 시종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임금께서는 듣던 대로 인자한 분이 아닙니다. 이렇게 떨어진 바지를 좌우의 신하에게 하사하지 않고, 어찌 잘 저장해두라고 분부하십니까? 참으로 인색하신 분입니다.”

방자하리만치 곧은 시종의 질문에 소후가 망설임 없이 답하였다.내가 듣자하니, 현명한 임금은 한번 찡그리고 한번 웃는 것[一嚬一笑(일빈일소)]도 아낀다고 하였다. 이 바지가 비록 떨어진 것이라지만, 어찌 한번 찡그리고 한번 웃는 일과 견주겠는가? 나는 뒷날 공을 세운 사람에게 이 바지를 주고자 하노라.”

우리나라는 대통령 제도를 갖춘 나라다. 그런데 법에도 있지 않은 책임총리라는 말이 언론에까지 오르내리는 실정이니,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과 힘은 얼마나 막강하던가? 이토록 중차대한 직책을 맡은 대통령이라면, 꼭 임금이 아닐지라도 소후의 언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임금이 누군가를 보고 본의 아니게 우연히 찡그렸다면, 아랫사람들은 임금이 그를 싫어한다고 여기며 따돌리기 마련이다. 반면에 임금이 멍하니 어떤 사람 쪽으로 바라보다가 뜬금없는 생각에 혼자 미소를 지었다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은 임금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겨 그에게 줄서기를 시도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은 분명 옛날의 임금들만큼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의 찡그림이나 미소조차 삼갔던 소후의 일화는 내재한 교훈이 크다. 정윤회 씨를 비롯한 청와대 주변의 인사들에게 현직 대통령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내주지 않았는가? 싫은 사람을 드러내놓고 미워하지는 않았는가? 일화 속의 시종처럼 곧은 말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던가?

전직 대통령은 물러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통치나 외교에 관련한 자신의 내심(?)을 그토록 쉽게 글이란 형식으로 내보이는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이라고 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인쇄 매체다. 백일하의 영원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G7으로의 진입이라는 현실적인 꿈 앞에서, 우리의 현직 대통령은 일빈일소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간행은 과연 적시(適時)라고 할 수 있는가?

유영봉(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