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학교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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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사랑의 벽돌 5장을 쌓으며 (모교 신년감사 음악회에 다녀와서...)
작성일: 2008-02-22 조회수: 86 작성자: 한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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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은 정말 가슴이 벅찬 날이었다. 그것은 재수도권총동문회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모교를 집단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탈출하며 모든 감정을 접고, 오직 우정과 친교, 그리고 모교애로 하나되는 순간이기에 이 순수함과 일체감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였다. 어쩌면 선후배 동문끼리, 남여의 성을 초월하고, 노소의 연령을 뛰어넘어 친목의 경지에 오르는 떠남이었고, 나홀로 긴 긴 여행을 떠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마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분은 이 즐거움과 그 고소한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리라.


장장 2시간 30분. 이 시간이 길게 느껴진 것은 빨리 목적지에 당도하고픈 마음에서였다. 얼마 후 우리는 서전주 IC를 빠져나와 도로가의 이정표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선명하게 쓰인 이름은 모교의 이름이었다. '전주대학교' 이 5자의 글자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나를 흥분하게 만들까.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이정표를 따라 모교를 향해 가는 우리 일행은 모두 창밖을 두리번 거렸다. 말로만 듣던 모교의 소식, 이제 내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40년만에 가는 분도 있고, 5년만에 가는 분도 있었지만 모교는 늘 그 옛날의 추억이고, 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향이다.


모교에 다다를 수록 나는 내 마음이 더욱 깊은 곳으로 끌려감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모교에 갔지만 모교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 나도 사람인지라 야릇한 마음을 가지며, 모교에 당도하였다. 모교의 정문에 도착하니 검정색 양복을 입은 신사 한분과 주변을 서성이는 몇분이 있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 수록 그 멋진 신사가 수위아저씨가 아님을 확인케 되었다. 검정양복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남식 총장이었다. 모교의 총장이 정문까지 나와 영접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음악회 행사장에 당도하여 떡국을 먹고,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순간 순간 감동의 연속이었다. 총장께서 직접 대학발전을 이야기 하고, 비전을 설명할 때 내가 이 대학교를 나온 것을 잘 했구나 싶기도 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우리는 비전과 희망이 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이 별거가 아니고 이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대학발전 기금 전달 퍼포먼스를 할 때 그 감동이 극에 달했다.


나는 내 스스로 그 순간 대리만족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사무총장이란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보다 더 많은 발전기금을 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경제적으로 여력이 없는 사람이다. 신문광고를 비롯한 제 매체광고 대행을 하고 있지만 돈벌이가 시원찮다. 따라서 늘 기도하는 마음과 육체적 봉사로 애교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최선을 다하며 위안을 찾고, 몸으로써 봉사하며 그 쾌락을 즐길 뿐이다. 그런데 양정무 회장이 1,000만원의 기금을 기부할 때 내 마음이 갑자기 후련해 짐을 느꼈다. 양회장의 돈이 그렇게 귀하고 값어치 있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돈을 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니 좋은 정도가 아니고 감동의 극에 달해 폭발할 지정이었다.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 내 형편껏 모교에 기여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사랑의 벽돌 1장 쌓기운동>에 동참해 보기로 하였다. 꾸깃꾸깃한 5만원을 호주머니에서 떠내 새 봉투에 담아 발전기금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나는 벽돌 5장을 쌓으면서 큰 해방감을 느꼈다. 나를 짓누르고 후벼파던 마음의 빚을 없앤 것 처럼 내 마음이 후련해 짐을 느꼈다. 무엇가 훨훨 떨어버리고, 하늘로 날[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젠 다시 모교를 찾아가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휘젓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사랑하는 나의 모교. 이제 그 곳에 자주 가고 싶다. 내 어머니 품으로 가는 것처럼 가고,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