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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거리에서 거리로 전통과 대중 사이 썸 만들기 (미네르바학부 김병오 교수님)

  • 등록일 : 2024-05-10
  • 조회수 : 24
  • 작성자 : 박해인

칼럼 바로 보기 : [예술확대경]거리에서 거리로 전통과 대중 사이 썸 만들기_ 글 김병오(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난해 공연 시장 매출이 영화 매출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역대 최대 수준인 약 1조 2천억 원을 기록한 공연 시장에서

한국음악 장르 티켓 판매액은 전년 대비 23.5% 줄었다.

문화적 고유성, 예술적 가치를 두루 지녔음에도

시장으로의 진입조차 힘겨운 전통공연예술이

대중과 그 어떠한 '썸'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밀고 무엇을 당겨야 성공할 수 있을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문화유산 등재 및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네스코(UNESCO)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문화유산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지역과 사회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문화유산이 성장과 혁신의 반대편에 남겨진 낡은 것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서 그 안에 잠재된 가치를 재평가하고 발굴하려는 사회경제적 활동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이에 호응하듯 대중도 다양화·상품화된 문화유산 앞에서 단순한 입장료 지불 수준을 넘어 저마다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전통공연예술을 문화유산으로 포함하고 '무형문화재'로 명명했다. 전통적 양식의 극, 음악, 무용, 공예 등이 보호 대상이 됐다. 문화재보호법은 1999년 이래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이 중 무형유산 부문은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독립 법안으로 2015년 새로이 제정됐는데, 이때 보호·전승의 기본원칙을 '원형(原型)'에서 '전형(典型)'으로 바꿨다. 전통공연예술이 생명력을 잃고 박제화된 모습으로 퇴락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후에도 전통공연예술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2023년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공연 중 한국음악 부문의 공연 건수가 5.8%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티켓 매출 기준으로는 가장 낮은 0.4%에 그쳤다. 또한 모든 공연 분야 가운데 유일하게 전년 대비 티켓 매출이 하락(23.5%)했다.


냉정히 말하자면 대다수 전통공연예술은 문화유산 보호제도라는 산소호흡기를 통해 연명해왔고 정부의 지원 예산 증감에 따라 생태계의 흐름이 결정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전통공연예술이 현대사회에서도 과거와 같은 대중성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 마찬가지이며 경제적으로 성숙한 나라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통을 길어 올려 새로운 유행과 문화를 창조해내려는 사람들의 도전 역시 세계 곳곳에서 계속돼 왔다. 우리는 그러한 도전 속에서 시사점을 얻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1984년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첫선을 보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전통연희의 현대화 ·대중화를 모두 갖추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좋은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공연 티켓 예매 순위 상위 20개 작품 중 대중음악과 뮤지컬이 아닌 다른 장르는 '태양의 서커스' 내한 공연 ❬루치아❭가 유일했다. 대중적 흥행물로서의 전통 서커스는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조선 영·정조 시대에 연희의 기본 포맷을 형성하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흥행의 정점에 올랐다가 20세기 중반 이후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우리나라 판소리와 성장 서사를 공유하는 서구의 전통연희라 할 만하다. 20세기 초중반 우리나라의 창극단처럼 이동식 유랑극단 체제로 연행을 시작한 '태양의 서커스'는 전통적 연행 요소 가운데 곡예, 저글링 등을 선택적으로 계승하고 윤리적, 경제적 양 측면에서 동시대성을 상실한 요소, 예를 들면 동물의 출현 등은 배제했다. 거기에 첨단 기술 기반의 신규 연행 요소들과 글로벌 감각을 적극적으로 결합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서커스라는 구래의 공연물을 현대적으로 재정의했다.


거리의 광대들로부터 비롯된 '태양의 서커스'는 1983년 캐나다 정부로부터 16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는데 시기와 금액을 고려하면 상당한 정책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거리의 광대들은 이를 토대로 전통을 혁신한 새로운 공연물로의 전환에 성공했고 800석 규모의 텐트로부터 새로운 대형 서커스 공연의 출발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1992년부터 정부의 지원금 수령을 중단하고 오히려 그들이 다른 예술 단체의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태양의 서커스'에는 많은 시사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통공연예술의 보호·전승이 아닌 창의와 혁신을 향해 대규모의 정부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 그리고 지원 기한에 일정한 범위가 설정되고 연희자들의 자립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건강한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내 전통연희의 역사 속에서는 되새겨볼 만한 사례가 없을까.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제도를 만들 때 한국의 법제를 모범으로 했다고 하는데 한국에 성공적인 사례가 없을 리 없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여기에서 소개하려는 한국의 사례는 유네스코가 생각하는 모범적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배제됐던 인물로부터 창출됐다. '병심춤'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옥진의 사례는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1983년, 국내 한 일간지에는 "전통 예술인(藝術人)들 인기인(人氣人) 돼간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등장했다. 조상현, 박동진, 성창순, 오정숙, 김숙자, 이매방 등 전통연희계의 내로라하는 이름들을 뒤로 돌려세우고 공옥진이 기사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이들 가운데 훗날 '인간문화재'가 되지 못한 사람도 공옥진뿐이었다. 그가 죽기 2년 전 전라남도가 뒤늦게 예능보유자로 지정하긴 했으나 지극히 형식적인 조처였다. 1978년 소극장 무대에 깜짝 선보인 이래 2012년 타계할 때까지 공옥진은 전통예술인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성공을 거뒀고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전통예술인 가운데 공옥진보다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는 없다고 단언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태양의 서커스'와 마찬가지로 공옥진 역시 거리에서 탄생한 광대였다. 서울의 소극장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오랫동안 저잣거리에 거적을 깔고 막걸리 좌판을 벌여가면서 독특한 연행을 선보였다. 그가 팔려던 상품이 공연이었는지 막걸리였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거리에서 성장했기에 스승이 없었고 스승이 없었기에 문화재 보호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자면 스승이 없었기에 창의적인 표현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고 보호제도에서 배제됐기에 권력의 관리·감독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반세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전통예술인 공옥진의 배경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공옥진을 통해 정책의 무용함을 시사점으로 도출할 것인가.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공옥진이 제도의 직접적 수혜자로 특정된 적은 없지만, 그를 대도시 무대로 초대한 기획자들이 정부 진흥정책의 수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옥진이 처음 데뷔한 '공간사랑' 무대를 포함해 그가 출연해 인기를 끈 여러 공연은 기획자들을 매개로 정부의 지원금이 투입된 사례들이다. 즉 공옥진의 성공 역시 어느 정도까지는 간접적 방식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은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전통 재창조를 통해 시장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국내외의 두 가지 대표적 사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봤다. '태양의 서커스'는 전통연희가 양질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국가나 지자체가 원형이나 전형의 보호·전승이 아닌 혁신과 횡단에 규모 있게 투자할 수 있는 논리를 도출해내야 함을 웅변해준다. 서양 전통음악인 클래식 부문에서도 지난해 대중의 마음을 얻은 이들은 전통 그 자체를 재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크로스오버-횡단을 감행한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티켓 매출 상위 10건의 공연 모두가 크로스오버 작품이었다.


공옥진의 사례는 지원정책의 중심축 이동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수십 년간 수혜자를 특정하고 무대 인력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시장에서 성공하고 자립한 사례를 좀처럼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중의 취향과 흥행에 능숙한 기획 부문을 경유한 간접 지원 방식을 통해서는 공옥진의 놀라운 성공 이후로도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통공연예술인들의 다양한 성공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편 공옥진과 '태양의 서커스' 두 사례에서 눈에 띄는 점은 창작과 연행 활동을 유랑극단과 저잣거리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사례로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 없지만, 직관적 차원으로 말하자면 전통공연예술 지원정책의 성과 확인은 거리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후예가 거리에서 다양한 축제를 벌이고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추한다면 무리한 의견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횡단과 혁신을 향해 투자하고 그것의 성과는 시장에서 평가받고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말이다.




글 김병오(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에서 역사학, 음악학, 문화유산정보학을 차례로 전공했다. 기술과 매체를 중심으로 국악, 양악, 대중음악을 두루 연구해왔고 연희자로서 무대 활동도 병행해왔다. 국악방송 DJ를 지내기도 했으며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 관악FM 이사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