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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생각하다

  • 등록일 : 2024-03-27
  • 조회수 : 49
  • 작성자 : 대학신문사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4년 3월 27일(수)]



생각을 생각하다


한병수 목사

(선교신학대학원장·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교수)


 생각(팡세, Pensées)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생각으로 인해 인간은 본성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생각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간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입국이 불가능한 국가의 국경선도 마음대로 출입하고 지구의 대기권도 수시로 뚫고 나가 우주의 다양한 별들을 방문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비용이 들지 않고 출입 수수료도 없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더듬으며 엿보는 것도 가능하다. 무수히 많은 사물과 사건들을 마음대로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 이토록 놀라운 창조력을 지닌 생각은 조물주가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 사용법에 미숙하다. 사유의 근육이 부실해서 그 무한한 자유를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주어진 한계 속에서만 살아간다. 그런 인생은 답답하고 고달프다. 우리는 생각이 자라도록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생각의 근육이 자라도록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생각의 장인이 인생의 장인이다. 인생은 사유라는 자유의 산물이다. 생각이 그리는 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은 곧 인생이요 인생은 곧 생각이다.

 공부는 생각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작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은 모두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다만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한 가지를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계속해서 생각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어떠한 생각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생각은 인생의 양식이고 인생은 생각의 토양이다. 생각 없는 삶은 무모하고 삶 없는 생각은 공허하다. 건강한 생각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 즉 진리의 조각을 발굴하고 이해하고 체득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체득된 진리 조각들의 총량은 인생의 몸무게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생의 가벼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생의 무게를 키우는 사유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하다. 그래서 삶의 여러 국면을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관찰한다. 그럴수록 이전에도 보았으나 그냥 지나간 아름다운 의미의 조용한 보석들이 이제는 눈으로 들어와 걸음을 붙잡는다. 그 보석들을 문장으로 채굴하여 담은 나의 모든 저술은 나의 인생에 스며든 생각의 소중한 얼룩이다. 

 인생의 모든 골목은 사유의 보석들로 빛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이것이 인생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에 감사의 무릎을 조아린다. 어제는 생각이 어둠의 꼬리를 물고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답답한 시선을 밖으로 꺼내려고 투명한 사각 창으로 다가갔다. 늦은 밤인데도 자동차가 많다. 바퀴 달린 문명이 지르는 어두운 절규가 창에서 부서진다. 창문은 이중간첩이다. 밖을 보는 나를 어둠이 밖에서 구경한다. 실내의 정보를 밖으로 빼돌리고 밖의 상황을 안으로 배달한다. 평범한 창문이 인생의 선생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눈금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생각의 키도 조금씩 자라간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알면서도 사유 공부에는 나이가 들수록 절정에 다가가고 무덤에 이를 때까지 은퇴가 없다는 사실이 나의 웃음을 엎질렀다. 진실로 우리의 삶은 나이를 불문하고 하루하루 고조되는 배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생각은 유년기와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에 모두 유용하다. 그래서 사유는 노후대책 용도로도 적격이다. 머리가 희어져도, 허리가 휘어져도, 이빨이 흔들려도, 시력이 나빠져도, 속도가 떨어져도 사유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배우는 즐거움은 세월이 하얗게 될수록 더 커지기 때문이다. 종사하는 직업이 어떠하든 성별이 어떠하든 우리는 언제나 생각이 사는 인생이다. 

 생각의 거인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끊어내고 주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에 열광하며 자랑한다. 그러나 생각의 오지랖이 과도하게 넓으면 그만큼 본질적인 생각에 대한 집중력은 옥상에서 떨어진다. 지혜로운 생각의 크기는 믿음의 분량과 비례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주목한다. 믿음이 크면 클수록 믿는 도리의 사도이며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모든 분야와 사안을 막론하고, 무엇이든 참되고 경건하고 옳으며 정결하고 칭찬과 사랑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생각의 거인은 예수님을 생각의 종착지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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