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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성경] 카리스마와 카리스

  • 등록일 : 2024-03-27
  • 조회수 : 39
  • 작성자 : 대학신문사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4년 3월 27일(수)]


<쉽게 읽는 성경> ⑪


[쉽게 읽는 성경] 카리스마와 카리스


조재천 교수

(선교신학대학원)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곧 실시된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리더로서 활동해 온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섬기겠다며 입후보했다. 유권자들은 각자의 신성한 한 표를 누구에게 줄지 고민이 된다. 누가 훌륭한 지도자인지 분별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서류상 이력을 봐야겠지만 그것으로 사람을 다 알 수 없다. 거리에서 유세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TV 방송이 아니더라도 유튜브나 SNS에 올려진 영상을 통해 후보자의 얼굴과 말씨, 표정도 관찰할 수 있다. 낯선 사람이라도 직접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면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듣는 것과 다른, 생생한 느낌과 인상을 받게 된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느낌, 어떤 분위기와 에너지, 힘 같은 것들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거나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인상을 우리는 흔히 카리스마라고 부른다. 카리스마는 O, X 문제의 답과 같다. 어떤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있거나 혹은 없는 것이다. 

 “그대 속에 있는 은사, 곧 그대가 장로들의 안수를 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그대에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디모데전서 4장 14절)

 바울은 그의 제자이며 동역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디모데가 받은 ‘은사’(카리스마)를 거론한다. 바울이 그의 다른 편지들에서도 ‘은사’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었다. 그것은 성령, 즉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오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은사’는 일종의 신적인 능력이나 기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예언이나 방언, 지식이나 지혜의 은사처럼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2장). 자연 상태의 인간이 가진 인식 능력이나 언어 능력을 넘어 초월적인 존재를 인식하고 하나님이 초월적인 방식으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끌어가시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알아채는 능력이 바로 ‘은사’에 속한다. 디모데가 안수받을 때, 즉 목회자로 임직할 때 그런 은사 중 하나를 부여받았을 수 있다.

 신비롭고 초월적인 능력이 ‘카리스마’라고 규정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물은 노력이나 비용에 따른 대가의 반대 개념이다. 노력하지 않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주어진 것을 ‘카리스마’라고 한다. 거저 주어졌지만, 그것은 무가치하거나 사소하지 않다. 오히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고 특별하다. It is invaluable, not valuelss!

 디모데가 목회자로 임명될 때 받은 은사가 정확히 무엇인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지역 교회의 지도자로서, 신앙공동체의 리더로서 그에게 필요했던 어떤 것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만을 돋보이게 만들고 스스로 우월감에 취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에게 특별한 권위를 느끼게 해서 그를 존경하게 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발견하게 하는 그런 자질과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크고 작은 공동체와 조직의 리더에게 기대하는 ‘카리스마’와 완전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카리스마는 어떤 특정한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다. 말을 권위 있게 하거나 표정을 권위 있게 짓는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게 아니듯, 카리스마는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풍겨 나와서 사람을 사로잡는 어떤 힘이다. 종종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 원천을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 카리스마는 가져 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리스마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어쩌면 진정성(authenticity)이라고 말할 수 있다. 꾸며 내지 않은 진짜 공감, 진짜 열정, 진짜 신념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고, 생각을 바꾸게 할 수 있고, 행동하게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진심과 위선, 순수와 거짓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확신에 찼다가도 금방 주저하게 되고, 자기 모든 걸 다 줄 것처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상대방을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취할 방도는 찾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작은 공동체 혹은 큰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바로 그 평범성을 탈피해야 한다. 

 뛰어난 리더가 다 기독교인은 아니고,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누구나 카리스마를 지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공동체를 섬김으로써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례받으면서 물속에 온몸이 잠길 때 기독교인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중생(重生) 혹은 회심(悔心)을 의례화(ritualize)한다. 껍데기와 가식,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인생, 욕망의 충돌로 점철된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무덤에 묻어 버린 다음, 하나님이 지으신 원초적이고 고유한, 가장 자기다운 삶, 가장 인간다운 자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고백이고 체험이다.

 그리스어 명사 ‘카리스마’ 속에는 또 다른 명사 ‘카리스’가 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말로 흔히 ‘은혜’ 혹은 ‘은총’이라고 번역되는 단어이다. 하나님에 의해 빚어지고 새로 태어난 존재로서 거저 받은 사랑, 용서, 능력을 통칭해서 ‘은혜’라고 한다. 은혜는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갇히거나 고여 있지 않고 넘치고 흘러가는 속성을 지닌다. 카리스를 받은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카리스를 베푼다. 어쩌면 거기에 카리스마의 의미와 목적이 있는지 모른다. 카리스 없는 카리스마는 독선적이고 폭압적일 수 있다.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소외시키는 카리스마는 사회악이며 공동체의 독소이다. 카리스로 방향 지어진 카리스마가 진정한 카리스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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