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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연구단] 일제강점기 ‘조선적’ 기독교의 모색과 최태용
작성일 2022-02-24 조회수 673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첨부 : 2022.01.31.논문. 일제강점기 '조선적' 기독교의 모색과 최태용.pdf 파일의 QR Code 2022.01.31.논문. 일제강점기 '조선적' 기독교의 모색과 최태용.pdf  2022.01.31.논문. 일제강점기 '조선적' 기독교의 모색과 최태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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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일제강점기 조선 교회의 ‘자립화’ 운동은 선교사의 교권 독점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어, 서구 선교사에 의해 이식된 정통적·보수적 신학에 저항하는 한편, 새로운 신학 사조를 수용함으로써 조선 교회의 정치, 경제, 신학적 자립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것으로 이해된 기독교를 창출하려는 ‘조선적’ 기독교가 구상되었다. 

조선 교회의 ‘자립화’ 운동은 선교사의 독점적 권한에 대한 저항과 지역 갈등 등 교회 내 제 문제로 인해 기성 교단에서 분립하여 독립 교회를 자처했던 반교 권운동과 교권투쟁에 더해 선교사의 보수신학 역시 거부하며, 세계 신 사조를 받아들여 자유로운 신학적 분위기를 추구했던 반선교사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태용은 반선교사적 흐름에서 선교사와 조선 교회의 신앙 부재를 비판하는 한편, 무교회주의, 자유주의 신학과 근대 철학 사조를 받아들이며 “영적 기독교” 라는 독자적인 신학을 구축했다. 영적 기독교에서 신앙의 현재성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인의 의식으로 표출된 기독교가 성립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조선에 만연한 보수 신학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최태용은 기성교회로부터 이단시 되었다. 그는 10년간의 문서 전도를 중단하고 영적기독교를 펼칠 장으로 ‘기독교조선복음교회’를 설립했다. 교회 설립 이후 최태용은 교회 존립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신학 연구를 중단되었고, ‘조선적’ 기독교에 대한 고민 역시 더 발전시키거나, 구체화하지 못했다. 그는 조선 기독교의 자립을 위한 극복 대상을 서구 선교사만으로 한정했고, 식민지 상황에 대한 의식 부재는 전시체제기 친일 협력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