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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연구단] 개항기 신문매체를 통해 본 19세기 말의 ‘의리(義理)’ 개념
작성일 2021-02-01 조회수 872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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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의리 개념은 조선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의 핵심 개념이었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부정적이거나 희화화되어 통용된다. 이러한 의미 사이의 간극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리 개념 또한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준다. 본 논문은 개념사 방법론을 적용해 개항기 신문 매체에 나오는 의리 개념의 분석을 시도해보았다. 이를 통해 먼저 19세기 말에 유교적 의리 개념이 확장되고 변용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조선후기의 정치적 사건으로 충역시비가 일어나자 이를 봉합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정치의리’가 세워지면서 일종의 ‘정치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조선의 유일한 가치체계를 대표하는 의리 개념이 서구의 ‘신학문’과 비교되는 ‘상대화’ 경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군주에 대한 충성을 확장시켜 국가에 대한 충성을 지향하거나, 춘추대의에 입각하여 의리 개념을 근대국제관계에 적용시키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의리 개념의 의미장 내에서 유교적 지향이 사라진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개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도리나 정의처럼 보편적인 가치를 끌어오고 있었다. 기독교와 관련된 기사에서는 유교적 의리 개념과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된 의리 개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리 개념 분석을 통해 19세기 말 의리 개념의 의미장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의리라는 언표는 성리학을 대표하는 핵심 가치였지만, 개항기에는 더 이상 유교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