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학교

JEONJU UNIVERSITY DEPT. OF MATERIALS SCIENCE AND CHEMICAL ENGINEERING

전주대학교 신소재화학공학과

공지사항

공지사항 게시글의 상세 화면
캘빈의 직업 소명설" "모든 이들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소명이다."
작성일: 2014-01-13 조회수: 1330 작성자: 나노신소재공학과
아래 글은 종교개혁가 캘빈의 직업소명설을 성명한 글로서 ㄹ인터넷 사이트  
http://www.clm.or.kr/technote/readr.cgi?board=study&x_number=1104471003

에서 따온 글이다. 우리 학생들이 어려운 전공 공부를 하는 이유를 신성한 종교적 소명에서 찾기를 바란다.

강홍석
---------------------------------------------------------------------------------------------------------------------------------------------------------------------------------------------------------------------------------------------------------------------------------------------------------------------
소명이란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면 직업도 소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갈수록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 현재 정규직에 근무하고 있다하더라도 언제 이 직장을 떠날지 알 수가 없다. 보통 첫 직장에서 근무하는 평균연한이 약 2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만큼 직장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말이다. 또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직장에 대한 애정과 충성 그리고 소명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가 아르바이트나 임시직으로 있으면서도 그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서 똑 같은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마 직장에 대한 소속감의 정도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다르게 나올 것이다. 따라서 직업을 자리나 신분으로 받아들이면 거기에 소명감을 부여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직업과 소명을 말할 때 직업의 개념은 오히려 일의 개념에 가깝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직업의 본질은 일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업을 일의 개념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이해하면 그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기 쉽다.
예컨대 직업을 단순한 생계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급여의 수준에 따라서 그 충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 또 직업을 명예직으로 생각한다면 섬기고 헌신하는 일에 있어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직업과 소명을 논할 때 그것은 일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준 것이 바로 일이다. 이마에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인간의 땀과 수고와 노력을 통해 인간이 복을 누리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일은 신성한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그 상표 때문이 아니라 직장을 통해 얻게 되는 일 때문에 감사하며 기뻐할 일이다. 우리는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직장을 바꾸어야 할 경우가 있다. 이 때 우리는 이 직장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일까 하고 질문한다. 이런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고 기도하며 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지나치게 메이면 우리는 일의 신성과 거룩함을 모독하기 쉽다.
내게 어떤 일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일로 받아들이는 소명의식이 우리에게 먼저 요구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일하지 않고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하나님은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터에서 우리를 훈련한다. 문제는 내가 직업과 일을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터는 늘 가변적이다. 특히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분명하다면 어떤 일이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자들이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는 일에 대한 충성과 경건이다. 다른 하나는 일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로 드리는 것이다.
첫째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일을 할 때 사람 앞에서 하듯이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해야 한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일은 상황에 따라서 변질되게 되어 있다. 감독이 소홀하거나 급여가 적으면 인간은 일을 게을리 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는 그럴 수 없다. 아무리 하찮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내게 주어진 일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일이다. 이런 인식이 있으면 사람이나 상황을 둘러보지 않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자는 경건해야 한다. 거짓이나 부정과 같은 불경건한 행위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의 두 아들을 보자 그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직분을 이용하여 물건을 탐하고 판결을 왜곡시켰다. 하나님은 자신의 제사가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장직을 박탈하였다. 죄와 거짓된 것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윤리성이 요구된다.
아무리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일하는 자가 비윤리적이면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일에 있어서는 반드시 관계가 따르게 되어 있다. 일 못지않게 건강하고 정직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신자에게 요구된다. 기독교인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는 풍토를 우리 스스로가 일구어 나가야 한다.
둘째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로 드려야 한다. 직장 안에서 성도의 소명은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하지 않고 동료를 섬기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직업적 소명이 그것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소극적인 방식이다. 보다 적극적인 방식은 일의 내용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으로 드려야 한다. 예컨대 편의주의에 익숙해진 관행들은 과감히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이 최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한다.
기업가는 공정한 방식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학습과정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진화론과 같은 비기독교적인 이론에 대하여는 그 허구성을 증명하고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일의 내용이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인 것들에 대하여는 변화를 모색하고 바로 세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요즈음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열심히 논의되고 있다. 이 개혁입법의 기본적인 취지는 사립학교에 있어 의사결정의 민주화와 재정운영의 투명성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기독교적인 규정들이 담겨져 있다.
즉 사립학교에 있어 종교행사가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규제되고 있는 것이다. 미션스쿨이 교육적 차원뿐만 아니라 선교적 차원에서 세워진 점을 감안한다면 그 설립취지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국회의원들은 이런 비기독교적 입법에 대하여 소명을 가지고 대응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일의 내용을 바로 세우고 효율을 극대화 하는데 기독교인이 앞장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창조적인 피조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장 안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의 직업적 소명과 신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직업적 소명은 의식이나 신념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신앙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일에 대하여충성하고 그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직업 활동과 교회생활은 같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직업적 소명을 말할 때 자칫 이원론에 빠지기 쉽다. 직업의 윤리가 따로 있고 신앙의 윤리가 따로 있는 것처럼 판단하기 쉽다는 말이다. 엄격히 말하면 직업적 소명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을 외면하고 일에 충성할 수가 없다. 정직하고 경건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
기독교인은 신앙의 윤리가 직장 안에서도 통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믿는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어떻게 사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직장 안에서 기독교인이 바르고 효율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복음화 하기 어렵다. 말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윤리를 직업과 일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런 활동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한 신앙훈련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