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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오항녕 교수 연구팀, 율곡이이 저서 집대성 '교감본 율곡전서' 펴내
작성일: 2020-06-10 조회수: 259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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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여 년 만에 다시 만나는 율곡 이이의 모든 것

― 율곡연구원 '교감본 율곡전서' 간행전주대 오항녕 교수 연구팀 정본화 성과 -


율곡전서를 새로 간행하는 까닭은?


아홉 번 과거에서 장원을 했다는 율곡(栗谷이이(李珥, 1536~1584)의 과거시험 답안지 「천도책(天道策)」은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을 담은 뛰어난 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중국 북경까지 알려져 조선에 오는 사신들은 이 글의 주인공을 만나고 싶어 했고만나면 영광으로 생각했다율곡연보에 보면 「천도책」은 23세인 무오년(1558) 작품이라고 했다하지만 '명종실록'이나 당시 시험관이었던 양응정(梁應鼎)의 '송천집(松川集)' 같은 기록에 따르면 '천도책'은 갑자년인 1564년 작품이다한편 율곡이 강릉 경포대를 보고 지었다는 「경포대의 노래(鏡浦臺賦)」는 어떨까이 글은 율곡이 10세 때 지은 것이라고 '율곡전서'에 나와 있다이 글은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강릉부사였던 조하망(曺夏望)이 율곡의 외가에서 구했다고 하여 '율곡전서'에 수록된 것이다이게 사실일까이 글이 정말 율곡의 글일까?


이런 착오나 의심스러운 정황이 생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첫째율곡 이이는 병조판서이조판서로 격무에 시달리다가 4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그러다보니 자신의 시문을 수습할 겨를이 없었고친구 성혼(成渾)과 제자 몇몇이 사후에 정리하였다가 문집으로 간행했다둘째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자들은 스승을 높이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세월이 흘러 당시 일을 잘 모르기도 해서 본의 아니게 스승의 업적을 과장하다가 오류를 저지르기도 한다. '율곡전서'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다율곡에 대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글자 하나하나를 대조 검토한 새로운 '율곡전서栗谷全書'가 필요한 이유이다율곡연구원(원장 박원재)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율곡학 연구의 기반 확충을 위해 율곡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21세기 판 율곡전서를 '교감본 율곡전서'(3권 1)라는 제목으로 새로이 간행하였다.


90여만 자에 달하는 『율곡전서』 10여 종의 판본 일일이 대조


3권 1질인 이번 '교감본 율곡전서'는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에서 수행한 율곡(栗谷이이(李珥)의 자료 집성(集成)과 정본화(定本化)” 연구(연구책임자 오항녕 전주대 교수)의 성과이다이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하는 〈한국학 분야 토대연구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진행되었다연구단은 3년 동안 90여만 자에 달하는 '율곡전서'를 10여 종의 비교본과 일일이 대조 확인해 '교감본 율곡전서'를 완성했다교감과 표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10여 차례에 걸친 워크숍을 개최했으며교감 범례를 작성하여 교감의 정확성과 통일성을 제고하였다특히 작품별로 자료의 연혁과 작성 시기 등 연대 고증을 포함한 저작보(著作譜)를 추가 제공함으로써 율곡의 행적과 교류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율곡 사후 그의 저술에 대한 간행 작업은 지금까지 모두 네 번 있었다율곡이 세상을 뜬 지 27년 뒤인 1611(광해군3)에 간행된 '율곡집'이 첫 번째이다율곡의 제자인 박여룡(朴汝龍), 김장생(金長生등이 해주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그러나 이것은 시집 1권과 문집 9권으로 이루어진 소략한 분량이었던 까닭에 1682(숙종8) 박세채(朴世采: 1631~1695)가 초간본에서 누락된 것들을 모아 속집 4별집 4외집 2권의 분량으로 재편집하여 간행하기에 이른다그러다가 1749(영조18) 노론-낙론계 거두인 도암(陶菴이재(李縡: 1680~1746)가 기존의 문집을 한 데 모은 뒤 여기에 '성학집요'와 '격몽요결' 등을 추가하여 편찬한 뒤홍계희(洪啓禧)가 습유를 추가하여 44권 38책으로 간행하였다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율곡전서'의 모본(母本)인데이 판본은 1814(순조14)에 다시 중간(重刊)되었다.


'율곡전서'는 중국 송나라 학자였던 정이(程頤)와 정호(程顥형제의 문집인 '이정전서(二程全書)'의 체제를 본뜬 것이다시문(詩文)과 함께 '격몽요결', '성학집요', '경연일기' 등 율곡의 단독 저술을 망라하여 율곡집’ 또는 율곡선생집이 아닌 율곡전서라고 부른 것이다하지만 이 '율곡전서'는 이전에 전해지던 모본(母本문집들과 차이가 있었고일부 작품이 새롭게 추가되는 등 자료의 연혁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교감본 율곡전서'는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1611년에 간행된 '율곡집'과 1682년 박세채가 편성·간행한 '율곡속집', '율곡외집', '율곡별집' 등에 수록된 작품들 또한 '율곡전서'의 동일 작품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교감을 거쳤다그리고 편집 체제는 이재의 '율곡전서'의 기본 편성을 유지하되 교감을 통해 오탈자를 바로잡았고한국고전번역원(원장 신승운)에서 제공한 「한국문집 번역·교점 지침 및 사례」에 따라 현대식 표점(標點)도 표시하여 전문 학자의 연구에 기여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율곡전서'의 국제화에도 편리하도록 하였다.


율곡학이라는 대해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나침반 역할 기대


한편, '교감본 율곡전서'의 간행을 가능케 한 율곡 이이의 자료 집성과 정본화” 사업팀에는 연구책임자인 전주대 오항녕 교수 외에정석태(부산대), 김경호(전남대), 김태완(숭실대), 이동국(예술의전당), 정재훈(경북대), 정해득(한신대), 이희중․이상돈(서울대), 이경동(고려대), 이인복(경북대국내의 역사철학서지학 연구자들이 두루 참여하여 작업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교감본 율곡전서' 간행에 대해 연구책임자인 전주대 오항녕 교수는 집을 지을 때 좋은 벽돌과 나무가 필요하듯이인물 연구에는 그가 남긴 문집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정본(正本)이 필요하다칸트나 마르크스 연구도 그들의 저술을 정본화하는 데서 출발하였다근래 퇴계 이황다산 정약용에 대한 정본화 연구가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감본 율곡전서'는 율곡 이이의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정본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박원재 원장 또한 율곡학이라는 대해를 항해하는 데 필수적인 최신 나침반을 새로 마련한 격이라고 자평하면서, “'교감본 율곡전서'가 율곡학 연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하였다.


율곡연구원(033-642-4982)에서는 율곡학 진흥 차원에서 이번에 간행된 '교감본 율곡전서'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