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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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일상적인 인사치레로 나누는 이 단문이 여러 상념을 불러오는 날입니다. 그 경계마저 모호해진 天災와 人災가 뒤섞인 혼돈의 시공간과 마주한 오늘, 우리에게 ‘안녕’은 여러 화두를 던져 줍니다. 사람의 가치가 다양한 척도와 관점으로 재단되는 이 시기에 많은 분들이 서로 묻습니다. 이런 세월에 ‘인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저기서 인문학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펼쳐지는데 그 가치 기준은 무엇인가? 인문정신이 구현해야 할 아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저도 그 질문을 나누는 무리에 있기에 그 답을 찾기 위해 함께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 길을 찾고 몸부림치는 터전이 바로 한국고전학연구소입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외진 곳에서 학문과 씨름할 때, 고전과 인문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쉬이 손 내밀기 미안하여 좌고우면하지 않고 愚公의 마음으로 묵묵히 한 길을 걷기 시작한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십 년 세월에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둘이 걷고 있다 생각했던 길에 많은 동역자들이 어깨를 걸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문·사·철(文史哲) 전공의 훌륭한 교수, 연구원과 수십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정신을 실천하는 마당이 되었습니다. 연구소는 조선시대 문집을 번역하는 거점연구소와 ‘근현대 지역공동체의 변화와 유교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인문학 중점연구소가 되었습니다. ‘한국근현대유학연구단’은 호서와 호남지역 근대 100년 유학자의 사회관계망을 10년 목표로 정리하고 있고 ‘율곡 연구단’은 이이(李珥) 선생의 문집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마음만 오롯하게 변하지 않고 자리한 지 10년이 지나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일이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당당하게 새길을 나아가려 합니다. 연구소에 다가온 일을 능히 나누고도 남을 따스한 동역자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힘, 바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묻기 면구스러운 오늘, 사람과 함께한다면 어떤 길이든 외길이 아닌 큰길이고, 먼길이 아닌 지름길이란 믿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5년 8월 천잠벌에서

한국고전학연구소장 변 주 승